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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hun Son / 귀 기울임

Created Sat, 01 Jul 2023 14:20:41 +0900
730 Words

2018년 10월 13일, 친구의 시를 읽고 쓴 글이다.

귀 기울임


정적이 감도는 밤이면

은은히 소리들 실려와


지지직 거리는 낡은 가로등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행여 그 속에서 당신의 소리

들릴까 가만히 귀 기울였지요.


잡음에 섞인 당신의 소리는 여려서

주파수를 맞추지 않자 흩어져버려요.


어릴적 오래된 라디오 소리를 들으려

미세하게 다이얼을 돌리던 그때처럼


그러니 당신 나를 기억한다면

가로등 앞에서 귀 기울여 주어요.


그리운 누군가 그 잔향이

은은히 소리에 실려올테니


고등학교 친구가 나에게 시 한 편을 보내왔다.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아마 자기가 쓴 글일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시 한 편 읽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란 메시지일까.. 아니다. 그저 좋은 글귀 하나를 나와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만가만 읽고나니 내가 걸은 밤풍경이 떠오른다. 하루를 끝내고 집과는 반대편으로, 가지 않았던 그런 길로 자박자박 걸을 때가 떠오른다. 고개를 들어 까아만 하늘을 본다. 조용하다. 군데군데 수 놓아져 있는 별들과 달이 노오란 가로등과 어우러진다.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만 들리는 것이 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 멀찍이 들리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조용함의 소리.

슬픔을 말하던 친구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내가 우는 소리 또한 들린다. 평소에는 듣지 못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한 명의 젊고 밝은 가로등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밝은 거리 아래를 지나며 젊음을 즐기고 하하호호 지낸다. 하지만 곧 그 불은 꺼질 수 밖에 없다. 적막함. 남들처럼, 두려움이 싫어 짜낸 불빛은 꺼졌다. 가로등은 그저 가로등 자신의 모습으로 남는다. 어두운 길목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불꺼진 우울한 가로등은 사람들에게 쓸모가 없다.

외롭다.

우리는 모두 한 명의 작고 어두운 가로등이다. 우리는 모두 흐느낀다. 그러니 가로등을 기억한다면 그의 옆에서 귀를 기울여보자. 가로등의 진짜 모습이 은은히 소리에 실려올 것이다.